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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면 될 것을이로사 시민기자의 청소년노동인권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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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8호] 승인 2017.06.14  00: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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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둘째 주에 ‘이로사 시민기자의 청소년노동인권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로사씨는 청소년인권복지센터 ‘내일’의 ‘일하는 청소년 지원 팀장’이며 중부청소년근로권익센터 상담원으로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과 상담, 권리구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9년에 결성된 인천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청소년 노동인권 상담을 하며 경험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냅니다.

   
▲ 이로사 청소년인권복지센터 ‘내일’ 일하는 청소년 지원 팀장
지난해 가을부터 동인천에 위치한 인천시청소년일시쉼터에 한 달에 한 번 노동인권 상담을 나갔다. 이곳은 인천의 특성화고등학교가 밀집된 중구ㆍ동구ㆍ남구와 가깝고 자격증 관련 학원들이 몰려있어,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하는 특성화고교 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인천에서 몇 안 되는 곳이다.

‘현장실습 성추행 사건’을 알게 된 첫 만남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누군가의 눈치나 압력을 신경 쓸 필요 없는 분위기, 솔직한 대화가 가능한 이런 공간이 없었다면, 현장실습 성추행 사건은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을 것 같다.

가해 현장실습 산업체와 이를 묵인한 학교, 사건을 인식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모른 채한 교사들, 무엇이 잘못됐는지도 모르고 무권리의 상황으로 내몰린 학생. 현장실습의 참혹한 민낯을 들추고 대응하기 전까지는 그저 개인이 느끼는 안타까움일 뿐, ‘어떤 정책이 잘못’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정책오류를 이야기하려면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처한 어려움과 심정을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분석하는 자료로는 당사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다. 만나고 듣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산업체에 파견돼 현장실습을 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부당한 걸 이야기해도 모두 묵살하려한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그런 분위기를 뚫고 나온 현장실습노동자들의 구체적 증언은 이렇다.

“해외 영화사에 관련한 사업을 하는 회사라고 소개를 받고 자기소개서를 내고 면접을 봤어요. 자격조건으로 OA(사무자동화) 자격증을 필요로 했는데, 입사했더니 뜬금없이 마케팅 일을 시켰죠. 무작위 스팸 광고를 진행하는 업무였어요. 그 뒤 입사교육을 할 때서야 마케팅회사라고 이야기했어요. 실제 일하는 것과 다르게 계약서를 작성하고, 연차 지급도 하지 않았고요. 연봉도 원래 학교에 알려줬던 것보다 적게 지급하는데, 우르르 몰려가 계약서에 사인하게 만들었죠. ‘스크립트’라고 주면서 달달 외워오지 않으면 밤 11시까지 남는다고 했어요. 첫 출근 후 일주일을 제외하고 6시 반에 퇴근해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텔레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라고 알고 들어갔어요. 저말고도 우리 학교에서 많이 면접을 봤고요. 이 일이 힘든 게 뭐냐면, ‘진상손님’ 많이 있잖아요. 그런 전화 받고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없어요. 바로 대기(다음 전화 받을 준비)해야 해요. 뒤에서 팀장들이 대기하라고 소리 지르고요. 팀으로 움직이는데 실적에 못 미치면 월급이 줄어요. 뉴스에 나온 ‘30분 휴식’ 같은 게 있다고는 하는데 실제로 시행한 적이 없어요. 밥 먹는 시간도 30분이 안 돼요. 처리 못한 상담 건을 해결하려면 휴식시간을 줄여야 해요”

전공과 일치하지 않는 일자리, 부당한 조건 때문에 현장실습을 중단하더라도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작성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학생 신분은 약자에 속한다. 거기에 미성년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조건이다. 학생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학교가 믿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되지 못한다면 어떠하겠는가.

“회사에 들어가 배운 거라곤 비자금을 관리하는 일이었어요. 회계서류를 이중으로 작성하는 일인데, 자세히는 모르지만 불법이었죠. 이런 줄 알았으면 취업하지 않았을 텐데…”

“디지털정보과 출신이에요. 학교에서 프로그램 언어, 일러스트, 웹디자인 같은 걸 배웠죠. 그런데 취업한 곳은 공항 면세품 인도장이었어요. 하루 종일 서서 바코드 찍는 일인데, 물류센터를 생각하면 되요. 취업이 아니고 알바 같은 느낌이었어요”

“일하면서 필요한 비품을 지급받지 못했어요. 사비로 사거나 빌려서 사용했죠. 언어폭력도 있었어요. 혼낼 때 부모님을 모욕하거나 호칭을 쓸 때 비하하는 표현들이 많았죠. 사회가 이런 곳인가, 정말 참기 어려웠어요”

학생들은 파견형 현장실습으로 직업을 체험하면서 건강한 가치관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배우라는 걸까. 참고 견디라는 것 외엔 없다. 자기발전의 기회도, 좋은 일자리도 아닌 곳에 학생들을 내모는 이유는 뭘까.

“(현장실습을 중단하고) 학교로 돌아와 선생님한테 혼났어요. ‘말도 없이 그 조건을 그냥 견디고 있었냐’고요. 저를 생각해주는 말 같지만 말이 안 돼는 게, 학교에서 그냥 계속 회사를 다니라는 입장이었거든요. 제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하면, 들어주는 것 같지만 해결방안은 없다는 것. 질질 끌면서 ‘사회생활은 원래 그런 거다. 너만 힘든 거 아니다’라는 입장이에요. ‘네가 선택해 간건데 나오면 다른 애가 갈 수 있는 자리 빼앗는 거다’라고 하면서 말도 못 꺼내게 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알아봐서 일자리를 두 군데나 구해왔어요. 하지만 학교는 그 회사에 전화해 면접 안 볼 거라고 했어요”

지금의 현장실습은 취업률 경쟁 때문에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 돌아오면 취업대상자에서 제외됐어요. 선생님들이 그렇게 이야기해요. ‘왜 못 버티고 나오냐’고요. 얼마 못 버티고 나오는 학생이 많으면 일단 그 업체를 의심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현장실습 중단 후 복교해) 운동장 뛰고 반성문 쓰고, 이런 거 불합리하다고 말하면 선생님이 화를 내요. ‘요즘 같은 때 누가 너한테 맞춰 주냐’ ‘책임감 없는 의지박약이다’ ‘복귀자 교육 받아라’ 명령하는 식이죠”


알바를 하면서 경험한 부당한 현실은 현장실습에서도 반복된다. 우리 사회가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열악한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학교는 솔직히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갖가지 방법으로 현장실습의 부끄러운 민낯을 취업률로 포장하고 있다.

교육의 인간화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언제쯤이면 우리도 진짜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일까? 함께 고민할 문제다.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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